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브드 알 말리크 (문단 편집) ===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 === 2차 피트나 종결 후, 아브드는 핫자즈를 이라크 총독으로 임명하여 동방 영토에서 여전히 준동하고 있는 [[카와리즈파]]를 토벌하게 한 뒤 자신은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 착수했다. 전쟁은 동전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는 688년에 맺은 조약에 따라 노미스마타를 바쳐야 했다. 그런데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692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새겨진 노미스마타를 주조했다. 이슬람 교리에는 인간의 모습을 새기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그는 황금의 무게는 같게 하되 예수의 모습이 없는 동전을 주조하여 바쳤는데,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이를 빌미로 삼아 선전포고했다. 이에 그는 동생 무함마드 이븐 마르완에게 아나톨리아 공격을 명령했다. 양군은 아나톨리아 동부의 세바스토폴리스에서 맞붙었다. 첫번째 교전에서 동로마군이 더 많은 적을 살해했다. 이에 무함마드는 동로마군 내의 슬라브 군인들을 매수했고, 2만에 달하는 슬라브인이 진영을 이탈했다. 동로마군은 이로 인해 혼란에 빠졌고, 무함마드는 이 틈에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하여 동로마군을 격파했다. [[레온티오스]] 장군은 수도로 소환된 뒤 패전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갇혔고, 우마이야 왕조는 승리의 여세를 몰아 아르메니아를 공략했다. 695년, 이프리키야 총독 하산 빈 알 누만은 그의 지시를 받고 카르타고를 공략했다. 이에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몰아내고 황위에 올랐던 레온티오스는 [[요안니스(아프리카 총독)|요안니스]]와 아프시마로스에게 해군을 맡겨 카르타고를 탈환하게 했다. 두 장군은 697년 기습 공격을 감행해 카르타고를 성공적으로 탈환하고 아랍군을 카이로로 축출했다. 그러나 698년 하산 빈 알 누만이 재차 반격을 가해 카르타고를 도로 공략했고, 로마 함대는 크레타 섬으로 철수했다. 그들은 곧 레온티오스에게 반기를 들기로 작정했고, 아프시마로스는 [[티베리오스 3세|티베리오스]]로 개명하고 요안니스를 처단한 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군해 레온티오스를 체포하여 코와 혀를 잘라버리고 달마티아의 수도원으로 보낸 뒤 새 황제로 즉위했다. 얼마 후, 하산은 [[베르베르인]]의 여왕 [[카히나]] 주위에 모인 제네트족의 역습에 직면했다. 그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바르카로 철수했지만, 아브드가 지원을 보내주자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가해 타바르카 인근에서 승리했다. 카히나는 참수되었고, 그녀의 머리는 702년 아브드에게 전해졌다. 이후 하산은 튀니지까지 공략했다. 705년 누만이 사망한 뒤 무사 이븐 누사이르가 새 총독으로 부임하여 북아프리카의 잔여 동로마 세력을 분쇄했다. 다만 지금의 [[지브롤터]] 해협에 해당하는 세우타 공략에는 실패했다.([[무슬림의 마그레브 정복 전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